카페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그간 커피와 관련하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포스팅 했었는데, 새로 마련한 [초보사장님을 위한 카페이야기] 카테고리에서는 카페 창업과 운영 등과 관련한 실무적인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해당 주제는 책이나 블로그, 유튜브 등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으며 전문가들도 많이 있습니다만, 개인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잘 이야기 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는 것 같아서 제 스타일대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앞으로 업로드 될 이야기는 카페 운영 또는 아르바이트 경험이 충분하다면 대수롭지 않게 느껴질 수 있는 그냥 그런 이야기 일 수도 있습니다. 다만, 카페를 처음 시작하면서 잘 몰라서 혹은 서툴러서 실수하거나 손해보는 일이 많고, 또 그러한 것들을 경험했고 많이 지켜본 입장에서 조금이나마 쓸모있는 조언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작성합니다.
※ 카페이야기는 카페 운영과 관련한 대부분의 것들을 다룰 예정이지만, 각각의 내용을 준비하는 시간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특정 순서로 진행되지는 않습니다. 대략 중요하다고 생각해 둔 것들을 우선으로 작성하겠지만, 시기나 여러 이슈에 따라 업로드 되는 이야기의 주제가 조정될 수 있습니다.
오늘 그 첫번째인 원두 이야기입니다.
1. 좋은 원두
맛있는 커피를 추출하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조건들이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좋은 원두에서 좋은 커피가 나옵니다. 그렇다면 좋은 원두란 무엇일까요? 높은 등급의 원두? 비싼 원두? 유명한 원두? 아라비카는 좋고 로부스타는 나쁠까요? 물론 고가로 거래되는 커피 원두는 이력추적도 가능하고, 더 많은 커피 성분을 함유하고 있고, 섬세한 로스팅이 더해져 더 많은 맛과 향기를 표현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런 면으로만 본다면 저가로 거래되는 낮은 등급의 원두보다 당연히 높은 등급의 원두가 좋다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카페를 운영합니다. 나와 나의 고객들은 바리스타 대회의 심사위원이 아니며, 나의 카페에서 기대하는 커피 맛이 있습니다. 이 점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번 포스팅에서 가장 중요하며 전체를 관통하는 이야기입니다. 나와 나의 고객들이 기대하는 커피 맛이 있고, 그 맛에 부합한다면 사실 원두의 종류나 등급같은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
좋은 원두란 추출자가 원하는 커피를 안정적으로 추출할 수 있는 원두입니다.
▶ 비싼 원두는 좋으니까 가격이 더 비싼것이 아닌가요?
높은 가격에 형성된 높은 등급의 커피는 좋은 환경에서 체계적으로 관리되어 다양한 커피 성분을 가지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 시장에서 커피 생두의 가격은 커피의 성분이나 맛 보다는 생산성에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좋은 품질의 커피가 높은 가격일 수는 있지만, 높은 가격의 커피가 무조건 좋은 품질의 커피는 아닐 수 있습니다. 또한, 산지와 품종에 따라 다른 성향을 가지기도 하는데, 추출자가 원하지 않는 성향을 가졌다면 품질이 좋아도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좋은 원두는 아닐 수 있습니다.
2. 어떤 원두가 아니라 어떤 커피.
앞서 어떤 원두가 좋은 원두인지 정의했다면, 이제 원두를 고르기 위해 어떤 커피가 좋은 커피인지 알아야합니다. 커피는 취향의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챔피언 바리스타가 만든 커피라도 모든 곳에서 환영받는 것은 아닙니다. 지역별로, 상권별로, 고객별로 다른 성격의 커피를 선호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간단합니다. 내가 운영하는 혹은 운영할 예정이 우리 지역에서 어떤 커피를 선호하는지 알아보고 원두를 선택하면 됩니다.
응? 그게 뭐야. 어떻게 하라고..
사람들이 어떤 커피를 선호하는지 예측하는 것은 어렵지만 매우 중요한 사항입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팔아야 내 카페를 운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재밌게도 많은 분들이 이 부분을 간과하고 넘어갑니다.
- 비싸고 좋은 커피가 맛있으니까 높은 가격의 좋은 원두를 쓰면 되겠지?
-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 많은 동네니까 달달한 믹스커피 같은 느낌이면 잘 팔리겠지?
- 여기는 야외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많으니까 그냥 더위를 식혀 줄 쓴맛나는 아이스아메리카노가 인기 있을거야.
이런 막연한 생각들로 메뉴를 구성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카페를 오픈하면서 매장의 방문예정 고객의 입맛을 정확히 예측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당연히 어떤 방향을 정해놓고(예상해보고) 그 오차를 수정해나가는 방법을 사용할 수 밖에 없겠지만, 이렇게 밖에 할 수 없을까요? 더 좋은 방법은 없을까요?
진짜 TIP.
어떤 커피가 좋은 커피인지 알기 위해서는 많이 마셔봐야 합니다. 당연히 좋은 커피를 만들기 위해서는 많이 마셔봐야 합니다. 나의 매장을 비롯한 주변 상권, 다른 지역의 비슷한 상권, 전혀 다른 상권이지만 인기있는 카페에도 가보고 무엇을 많이 마시는지 어떤 맛인지 살펴봐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냥 많이 마시기만 해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내가 지금 마시고 있는 커피가 무엇이 다른지 알 수 없다면 그냥 많이 마시는 경험은 살을 찌우는 것 외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여기서 이번 포스팅의 진짜 팁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 간이커핑. (별도의 용어가 없어서 간이 커핑으로 임시 명명합니다.)
우리가 시도해 볼 방법은 간이 커핑입니다. 마땅한 용어가 없어 간이커핑이라 명명했지만, 정석적인 커핑과는 당연히 다르며 목적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커핑이 본래 커피의 품질평가를 위한 목적으로 행해지는 방법이라면, 우리가 시도해 볼 간이커핑은 다양한 음료의 맛을 분석해보고 커피를 찾기 위한 일종의 감각훈련입니다.
# 방법
방법은 간단합니다.
1) 카페 등에서 메뉴를 주문한 후 단맛, 신맛, 쓴맛, 고소함, 향미, 바디 등을 수치화해서 기록하고 전체적인 향미, 느낌 등을 따로 적어둡니다. 여유가 있다면 마시는 환경(인테리어, 위치, 매장 상황, 분위기)이나 상황(식전, 식후, 날씨나 기분 등)등을 적어두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처음부터 너무 많은 것을 기록하려고 하면 지칠 수 있기 때문에 처음에는 음료 자체에만 집중하는 것이 좋습니다.
2) 예를 들면, 어느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마시면서 단맛 3, 신맛 1, 쓴맛 2, 고소함 3, 바디 2 등으로 맛을 표현하고, 음료에서 초콜릿과 볶은 견과류의 향미가 느껴졌다면 그 향을 기록해둡니다. 향미의 경우 어떤 향미가 어느 정도의 강도로 났는지 수치화해서 기록하는 것도 좋습니다. 바디감은 단순 수치로 기록할 수 있지만 특별한 느낌이 있다면 그 느낌을 적어두는 것도 좋습니다.
3) 이제, 다른 음료를 마시면서 앞서 작성한것과 같은 형태로 기록을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전에 맛본 음료와의 차이를 생각해보면서 맛보는 것입니다.
4) 사람들이 좋아하는 메뉴, 내가 좋다고 느꼈던 메뉴들과 그렇지 못한 메뉴들의 기록물을 비교합니다. 일정량 이상의 데이터가 축적되었다면 이를 통해 잠재 고객들과 나의 호불호와 이를 만족시킬 수 있는 수준을 확인할 수 있을겁니다.
# 포인트
실제 커핑 폼을 보면 다양한 항목들을 볼 수 있지만, 느끼지 못한 부분을 억지로 기록할 필요는 없습니다. 맛과 향기의 미묘한 차이들까지 캐치할 수 있다면 당연히 좋겠지만, 우리는 목적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이 훈련은 우리가 원하는 음료를 찾고 그것에 가깝게 가기 위함이지, 커피 전문가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느끼는 감각들을 수치화 한다는 것에 있습니다. 지금 시도하는 방법은 정석적인 커핑과는 달리 물의 양도, 추출방법이나 추출량도 제각각인 상황이 전제되기 때문에 명확하게 그 커피를 평가하는데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보면 제각각인 음료의 제조 상황은 사람들의 음료 취향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요소이기도 하며, 우리는 이 과정을 통해서 어떤 상황에서 좋은 느낌을 받았는지, 어떤 상황에서 불쾌함을 받았는지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이 몇 차례 반복되면 앞선 메뉴와 함께 지금 마시는 메뉴와의 차이가 구분이 되며, 사람들이 많이 찾았던 메뉴의 기록과 좋은 느낌을 받았던 메뉴들의 기록을 통해 사람들이 어떤 맛을 선호하는지, 내가 어떤 맛을 좋게 느꼈는지를 수치화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간이 커핑의 이점
1) 데이터의 축적
데이터의 축적은 보다 명확한 지향점을 만들어 줍니다. 간이커핑은 정석적인 커핑과는 달리 물의 양도, 추출방법이나 추출량도 제각각입니다. 그러나 이 과정을 통해 선호하는 취향(맛과 향미)과 그 정도를 파악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막연하게 어떤 느낌의 커피가 아니라 축적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원하는 느낌의 커피를 만들 수 있습니다.
2) 감각의 훈련
만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절대 미각이 될 수는 없겠지만, 다른 감각과 달리 미각과 후각은 생각보다 쉽게 훈련으로 강화됩니다. 중요한 것은 비교해보는 것인데 실제로 모든 표본을 놓고 비교해 볼 수 없지만, 시각적인 데이터와 함께 맛과 향의 정도를 비교함으로써 훈련이 됩니다. 추가적으로 커피가 아닌 음료나 다른 메뉴들에도 응용이 가능하며, 현업에서 충분히 쓸모있는 훈련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3. 정리.
정리를 해 봅시다. 좋은 원두는 '내가 원하는 커피를 만들 수 있는 원두' 입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원두를 사용하느냐' 보다 '어떤 커피를 원하는가' 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명확하게 알기 위해서 '간이커핑'이라는 팁을 소개하였습니다.
+ 기타)
사업을 하는 입장에서 분명히 해야하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바로 기준을 세우는 일입니다. 물론 시간이 지나고 다양한 상황과 직면하면서 지금의 기준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수정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명확한 지향점이 있는 상태에서의 수정과 그렇지 못한 상태에서의 수정은 전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간이커핑'이라 임시 명명한 감각훈련을 굳이 소개한 것은 여러분이 아직 초보라서 모르는 부분이 많지만, 그래도 지향하는 바가 있다면 그를 실현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간혹 커피를 감각의 영역이라고 하면서 대충 원두를 구매해 대충 추출해서 대충 판매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노력을 통해 측정가능하고 훈련 가능한 것들을 귀찮아하고, 이 귀찮음을 여러가지 이유로 에쁘게 포장하여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운이 좋아 여러가지가 잘 맞아 떨어진다면 잘 될수도 있을겁니다. 그런데 보통은 그렇지 못할 겁니다. 장사가 안되는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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