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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FFEE & TEA

카페이야기(3) 손님이 주문한 맛없는 커피.

by 수마트라 줄무늬 토끼 2023. 9.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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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전까지 원두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조금 뜬금 없는 것 같지만, 오늘은 스페셜 오더에 대해서 이야기해봅시다. '스페셜오더'는 이름처럼 뭔가 매우 특별한 주문일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사실 그냥 음료 커스텀 같은 것입니다. 매우 복잡하게는 레시피 자체를 변형하는 경우도 있지만, 간단하게는 샷을 추가하거나 줄이거나, 음료의 온도를 조금 더 높게 하거나 낮게 하는 등의 주문이기도 합니다. 그냥 본래 서비스되는 메뉴에서 고객 요청에 맞게 변형을 준다고 생각하면 쉽습니다.

참고로 '스페셜오더' 또는 '특별주문'은 외국의 모 카페에서 그렇게 부르는 걸 보고 계속 그렇게 불렀네요. 아무렇게나 불러도 상관없지만 편의대로 '스페셜오더'로 글을 작성합니다.

 

 

1. 스페셜오더 또는 음료 커스텀

"유기농말차프라푸치노 두유로 바꿔주시고, 그린파우더 5술, 자바침 반반, 휘핑에 초코 드리즐 추가해주세요."

스타벅스에서 인기 있는 '초코나무숲프라푸치노' 라는 메뉴입니다. 사실 정식 메뉴는 아니고 사람들이 말차프라푸치노의 레시피를 변형해서 만들고 공유하고 있는 레시피입니다. 보통 대형 프렌차이즈들은 레시피 변형이 가능한 커스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이용자가 많은 만큼 많은 검증(?)의 시간을 거치면서 독특한 레시피가 만들어지고 공유됩니다.

물론 이렇게 특별한 명칭을 가지게 되는 이른바 네임드 레시피들이 존재하지만, 사실 스페셜 오더 또는 음료 커스텀은 샷 추가나 시럽 추가, 음료의 양이나 농도 조절 등 매우 간단한 주문이기도 합니다. 물론 매장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각 매장은 나름의 기준으로 레시피를 가지고 있고, 특별한 어려움이 없다면 고객의 주문에 의해 유연하게 변형된 메뉴를 제공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2. 손님이 주문한 맛이 없는 음료.

오늘의 메인 주제입니다. 문제는 맛이 없는 음료입니다.

 

"라떼 아주 뜨겁게 해주세요."

가령 예를 들어 라떼의 우유를 아주 뜨겁게 해 달라는 주문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카페에서는 흔히 받는 요청입니다만, 라떼나 카푸치노와 같이 우유를 이용한 메뉴의 적정 스팀온도는 60도 전후이며, 서비스되는 온도는 55도 정도입니다. 우유는 68도 이상 가열시 가열취가 발생하며, 이 비릿하고 불쾌한 냄새는 음료의 맛을 떨어뜨립니다. 이와 같은 내용은 대부분의 바리스타가 알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음료를 만들기 이전에 손님에게 내용을 고지하고 동의를 구합니다. 자 이제 된걸까요?

"제 취향입니다." 혹은 "괜찮으니 그냥 이렇게 해주세요."와 같은 주문은 간혹 새로운 음료를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맛이 없는 음료를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물론 사전에 고객에게 이야기했고 동의한 사항이니 아무 문제가 없을 것 같지만, 아무 문제가 없었다면 이런 글을 작성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이 집 라떼는 음료가 비리더라. 이상한 냄새가 나."

소님의 요구에 맞춰 음료를 만들고 가열취가 불쾌할 수 있음을 사전에 고지하였음에도, 이런 소문이 돌아다닙니다. 문제는 보통 이런 경우 자신의 주문으로 인해 맛이 없는 음료가 되었지만, 이 불쾌한 경험으로 인해 다시 그 음료를 마실 가능성이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가열취에 대해 사전에 고지한 것과 필요 이상으로 뜨거운 음료를 주문한 것과는 별개로 고객은 그냥 이 카페에서 맛이 없는 음료를 마셨고, 이 카페 음료는 맛이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나는 것입니다. 고객 주문에 맞춰 음료를 만들었지만, 심지어 우리 카페에서 제공하는 정상적인 온도가 아니었지만, 그냥 우리집 라떼는 맛이없는 음료가 되었고, 그 평가를 바꿀 수 있을 기회조차 얻지 못합니다.

 

"저희 카페는 최적의 맛을 잃어버린 음식은 폐기하고 있으니 부디 양해 부탁 드리겠습니다."

모 수제 케이크 전문점에서 픽업 시간이 늦은 케이크를 폐기한 사건을 SNL에서 패러디한 대화내용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뭐 저런데가 다 있냐면서 분개했지만, 한편으로는 이해가 가는것도 사실입니다. (물론 내용을 확인하니 과한 부분이 있었다고 생각이 되기도 하고, 다른 방법을 생각해볼 수는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해당 사건에 잘잘못을 따지고 싶진 않아요.)

 

3. 그래서 어떻게 하라고?

음료 뿐 아니라 모든 영역에서 고객이 직접 무언가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굉장히 큰 메리트라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상품 본래의 품질이 떨어진다면 커스텀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경험 많은 바리스타라면 당연히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지만, 경험이 많지 않은 바리스타는 기본 레시피를 고수하는 것이 좋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맛이 없는 음료는 팔지 않는 것입니다.

 

'고객의 취향인데 어떻게 맛이 있는지 없는지 압니까?'

커피는 취향의 영역이니 무엇이 더 좋다 나쁘다라고 하기에 어려움이 있습니다만, 이 물음에는 현실적인 답을 하겠습니다. 새로운 음료에 대한 시도와 고객맞춤은 좋지만, 현실적으로 정상적인 맛이 기대되지 않거나, 어떤 맛이 나올지 모를 것 같은 메뉴라면 팔지 않는 것이 맞습니다.

 

4. 이렇게 해보자.

어떤 음료를 팔고 싶은지, 어떤 음료를 팔 것인지 사전에 기준을 정해두는 것이 좋습니다. 단순히 아메리카노나 라떼가 아니라 어떤 느낌이나 어떤 맛이 주가되는 음료였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고, 레시피나 음료를 만들 때에도 단순히 용량뿐만 아니라 음료가 가질 느낌을 함께 정해두면 좋습니다.

 

실제로 에스프레소 추출에서 도징량이나 추출량, 추출시간이 매번 정확하게 일치하지는 않으며, 희석하는 물의 비율도 비슷하지만 매번 일정하지는 않습니다. 사람도 기계도 약간의 오차가 있습니다. 내가 판매하는 음료가 어떤 느낌의 음료였으면 좋겠다고 정해두면 음료의 뉘앙스를 보고 이 오차 범위를 조절할 수 있고, 이는 추출 오류나 고객의 특별 주문에도 대응할 수 있는 기준이 됩니다. 이런 음료는 팔고 이런 음료는 팔지 말아야지 와 같은 기준이 생기는 겁니다.

 

물론 이건 그냥 한 방법입니다. 한 번 생각해봐도 좋고 무시하셔도 좋습니다. 그냥 '맛이 없는 음료를 팔지 말자.'만 기억하시면 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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